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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커뮤니케이션)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글쓴이 : 가정선교원
 
말(커뮤니케이션)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폴 데이빗 트립-

 말(커뮤니케이션)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하는 말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말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자기절제를 연습하면서 적정한 순간에 올바른 것을 말할 준비를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내 감정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대신, 하나님의 목적적인 관점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은 말의 전쟁에서 계속적인 승리를 얻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말의 파괴적인 힘을 인식하는 것을 포함한다. (갈라디아서 5:15). 바울은 우리에게 “깨어라 그렇지 않으면 서로로 인해 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전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축소하는 한, 말의 전쟁에서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길은 말을 통해서다. 격려하고, 꾸짖고, 설명하고, 가르치고, 정의하고, 정죄하고, 사랑하고, 질문하고, 나누고, 연합하고, 조언하고 판단하고, 화해하고, 다투고, 비방하는 등 말은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말이 끼치는 심각한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내 가족 안에게 내 뱉는 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2. 말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유를 단언하는 하는 것을 의미한다(갈5:13). 우리는 구원을 위한 율법의 요구로부터 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죄의 짐에서부터도 해방되었다.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율법의 짐에서 해방되었다. 우리는 또한 은혜로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은혜를 받는 영광을 얻을 수 없다. (로마서 6:1-14; 디도서 2:11-14)

 방종하는 말과 죄에 대해 관대한 말은 우리가 은혜의 자녀 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박됐던 상태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받은 직분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망각하는 것이다.

3.말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죄의 본성에게 “안돼” 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5:13,24) 죄의 본성을 방임하지 말라. 죄의 정욕과 욕망을 만족시키지 말라. 강력한 감정과 갈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 때문에 안돼 라고 말할 능력이 당신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죄인들처럼, 우리는 유혹을 받아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강한 감정과 욕망이 우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안돼” 라고 말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감정의 법칙이나 욕망의 법칙의 지배 아래 산다면, 우리는 그 은혜, 즉 우리 구세주의 구속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될 수 있다.

 사소한 상황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아내 루엘라는 침대에서 잠들려하는데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기차역에서 걸려온 아들 저스틴의 전화다. 아들이 픽업을 요청했다. 루엘라가 내게 말한다, “당신이 가줄래요?” 나는 즉각 격한 감정이 치민다. 하필 그해 겨울 중에서 가장 추운 날 밤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짜증이 난다. 항상 가야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처럼 느낀다. 나는 침대 속에 있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운전기사기 되어 주었으면 한다. 
 
 만약 이런 감정과 욕구에 의해 내 마음이 휘둘리게 놔둔다면, 내 마음이 가는대로 소통을 할 도리 밖에 없다. 내 말은 이기적이고 비난하는 투가 되고 자기 연민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리스도께 나를 주관해주시도록 맡겨드렸다. 확실히 이것은 단편적 사건이지만, 우리 모두는 이 같은 작은 순간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순간들이 정말로 우리의 언어를 결정한다.

4.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어서 5:13-14) 우리는 격한 감정과 욕구가 우리를 지배하려는 것에 대해 “안돼” 라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할 능력을 주시기 때문일 뿐 아니라, 섬김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종의 말을 벗고,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는 말을 입도록 부름 받는다.

에베소서 4:29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묘사해준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다른 사람을 잊고 내가 느끼고 원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 이타적인 말을 하도록 요구한다.

 만일 자신의 말로 다른 이들을 섬기고자 할 때. 바울은 고려할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나는 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이 될 것”). 내가 말하는 것을 구체화(shape)할 이 사람에 관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둘째, 나는 그 문제(“그들의 필요들에 따라”)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 상황에서 이 사람의 진짜 필요가 무엇이며, 그 필요에 따라 나는 어떻게 말을 이끌어 가야 하는가? 셋째, 나는 그 과정(“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단지 두서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사소통은 구속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

 죄는 필사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로 만든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자신의 필요와 바램에 관하여 생각한다. 우리는 주로 우리 자신의 복지에 헌신한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히 우리의 이기심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의 권능에 의지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구비시켜서 그의 대사로 말하게 하신다. 우리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헌신의 동기로 말할 수 있다. 

5.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성령으로” (갈5:25)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내 안에 그분이 역사하시도록 내어드리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성령의 역사는 아주 분명하다. 그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에 맞는 추수를 위해 일하신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믿음과 복종의 행위로서, 나는 이 열매의 표준에 내 말을 맞춘다.

6. 말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회복할 목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1-2) 바울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확실히 이해하자. 우선, 바울은 “너희가 만일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범행중인 누군가를 잡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죄인들로서 우리가 어떻게 범죄의 덫과 올가미에 빠져드는 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말한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야 한다.”그는 어떤 초 영적인 엘리트 회복집단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신령한”이라는 단어는 단지 성경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모든 신자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갈라디아서 5:25을 다시 언급하고 있다. 거기서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성령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것에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으로 행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의 회복자로서 섬기는 위치에 두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산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대행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우리의 말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죄의 본성에 관한 열정과 욕구로 말하는 것에는 어떤 여지도 주고 싶지 않다. 우리는 자만과 시기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죄짓게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물고 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의 말로 서로를 섬기기에 힘쓴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와 다른 사람들 안에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가 자라나도록 격려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칙으로 살기 위해 헌신된 상냥하고 겸손한 회복 대행자들로서, 짐을 운반해 주는 자들로서 말하고 싶다. 만일 우리가 이 부르심을 우리의 삶 의 모든 관계로 운반한다면, 어떤 급진적인 부흥과 화해와 회복이 일어날까? 만일 우리가 꾸준히 이런 종류의 의사소통에 전념한다면 일들이 어떻게 달라질까? 만일 우리가 구속의 말로 서로에게 말한다면 우리의 관계들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말(커뮤니케이션)의 전쟁의 승리에 대한 헌신은 말을 잘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